삶의 묵상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6. 10. 14. 11:19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입니다



어느 마을에 성자 사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덕망이 널리 알려진 탓으로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면 그 사제에게 찾아가 어려움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제는 숲속의 은밀한 곳에 들어가 홀로 신께 어떤 특별한 기도를 드렸고 신은 그 기도를 기쁘게 받아들여 마을을 어려움에서 구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거룩한 사제는 유명을 달리했고 그 후계자가 성자의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그 후계자는 거룩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성자 사제가 기도했던 숲속의 은밀한 장소와 특별한 기도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이 어려움을 가지고 찾아오면 숲속의 은밀한 장소를 찾아가 특별 기도문을 외우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은 제가 거룩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께서는 우리 마을을 모른체 하지는 안ㄶ으시겠죠? 부디 제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신은 그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여삐 여기셨고 마음 사람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 사제 역시 죽게 되었고 다른 훅계자가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 후계자는 그 특별한 기도문만 알았을 뿐 기도드리는 숲속의 은밀한 장소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이 문제를 가져 왔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세상 어느 곳에든 당신은 존재하십니다. 따라서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거룩한 장소가 아니겠는지요? 그러니 저의 기도를 물리치지 마시고 우리 마을을 도와 주십시오."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고 마을은 신의 축복으로 문제를 해격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 사제가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숲속의 은밀한 장소도 그 특별한 기도문도 모르는 사제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마을에 문제가 생기자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께서 중히 여기시는 것은 어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절망하는 가슴에서 울부짖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저의 기도를 거절하지 마시고 들어 주소서."

그리하여 마을은 여전히 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제가 죽고 다음 사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 사제는 기도보다는 돈의 힘을 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그에게 찾아가 문제를 상담했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이 만드신 세상 문제들을 아주 힘들이지 않고 간단히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면서도 사람들이 당신께소 나아와 울며 간청할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당신은 도대체 무엇하는 신입니까?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사제는 자신이 하던 일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신은 그 기도를 들어 주셨고 마을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밝은 사람을 축복해 준다. 낙관하는 마음은 자기뿐만 아니라 남들까지도 밝게 해 준다."라는 유태인의 격언이 생각나는 Anthony de Mello의 <입큰 개구리의 하품>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속한 행위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여 절대자에게 자신을 여는 인격적인 교류 행위입니다. 기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시키고 성장시키면서 완성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울림이 전해집니다.

어떤 나이든 사내가 성당에서 몇 시간씩이나 움직일 줄 모른체 앉아 있곤 했습니다. 어느 날 궁금한 사제는 하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고 그 중년 사내에게 물었습니다.

"그 분은 아무 말씀도 안하셨어요. 다만 듣기만 하시더군요."
"그래요. 그럼 선생께선 그 분께 무슨 말씀을 드렸습니까?"
"저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지요."

기도의 4가지 단계입니다.
나는 말하고 그 분은 듣는 것,
그 분은 말하고 나는 듣는 것,
그 분도 나도 말없이 서로 듣기만 하는 것,
둘 다 말도 없고 듣지도 않고 서로 침묵하는 것.